2007년 09월 30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나는 왜 슬프지 않을까?
두 달 가까이 책에 대해 글을 적지 않았네요.
솔직히 그동안 독서를 게을리 했습니다.
그 게으름이 바로 눈에 보이네요.;;
이 책은 전에 과외를 하기 위해 문제집을 살 때 같이 주문하였습니다.
그 때 가격이 저렴한 홍신문화사 책 중
눈에 들어온 책이었기에 주문하였습니다.
해당 책을 읽기 전에 제가 알고 있었던 정보는
'롯데 회장이 젊었을 때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아
회사 이름을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하였다.',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권총 자살한다.'입니다.
첫 번째 정보는 책을 읽을 계기가 되었지만,
두 번째 정보는 스포를 당한 것이 되어
책을 펴는 순간부터
'주인공은 언제 죽을까? 왜 죽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OTL...
위 책을 읽으면서 전 그리 큰 감명이나 감동,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러하구나.'라고 넘기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읽는 방식의 차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마치 비소설처럼 읽으면서 느끼는 부분에 체크를 하여
전체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 듯싶습니다.
(어쩌면 끝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소설의 줄거리 및 전체적인 느낌이 아닌
제가 체크한 곳 중 일부를 가져와 글을 적겠습니다.^^
(전략)
"과연 당신들은 이상적이군요.
정열이니 주정뱅이이니 미치광이이니 하면서
당신들은 태연히 시침을 떼고 있는 거요.
사실 당신들은 품행 방정한 분들이오!
주정뱅이를 욕하고 미치광이를 싫어하면서
마치 목사처럼 그들 옆을 지나가 바리새인과 같이
신이 자기를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지 않은 데 대하여 감사할 것입니다."
(중략)
"어떤 인간이 정신적으로 구속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여러 가지 영향이 그를 누르고,
여러 가지 이념이 그에게 고착되어,
마침내 불타오르는 정열로 말미암아 냉철한 사고력을 빼앗기고
그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침착하고 분별이 있는 사람은
이런 불행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여러모로 관찰할 수도 있고 충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건강한 사람이 병자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어 봐야
그의 체력의 만분의 일도 병자의 몸에
부어 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후략)
- 1741년 8월 12일 편지
위의 말은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자살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그가 꺼낸 말입니다.
하지만 전 자살에 대한 것보다는 저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열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라볼 때
그들은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님을 다행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정열에 빠진 적이 없는 저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지 않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을 읽고 뜨끔하였습니다.
또,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뒤 편지 중간 중간에 베르테르는
빌헬름이 하는 충고나 조언을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는 말로 듣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정열에 빠진 사람은
주위 사람의 얘기가 들어오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 비교를 아주 잘 가져왔다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자의 옆에 있다하여
건강한 사람의 체력이 병자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무슨 회복 마법처럼 치료해주는 사람이 자신의 마력(?)을 써서
병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병은 스스로 이기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것을 도와줄 뿐
기본적으로는 병자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무리 목마른 사슴(?)을 호숫가에 데려간다고 해도
자신이 먹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기절시킨 후 입을 벌려 물을 넣거나 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 없다면
힘든 몸으로 물을 찾아야 하기에
목표를 달성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에 옆에 건강한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비록 그가 회복마법사가 아닐지라도...
알베르트가 나중에 주무관 앞에서 범인에 대하여 한 말은
베르테르에게 몹시 거슬렸습니다.
그 말 가운데는 베르테르에 대한 반감이
은근히 비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지요.
하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의 예민한 마음은
주문관과 알베르트의 말이 정당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들의 견해를 인정한다면
자기의 인격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해야만 할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 편집자로부터
저 글은 과부를 끔찍이 사랑하던 머슴이
그 과부를 죽인 것에 대해
베르테르가 머슴을 변호하는 상황을 설명한 글입니다.
조금은 과하게 변호하는 듯 한 그의 말을 보면서
그 머슴이 자신과 같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싶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는 서로 가엾게 여기니까요.
저 글을 보고 문득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가끔 자신의 생각이 틀림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생각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틀린 것을 알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첫 번째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패배.
전쟁에 있어 패배는 죽음이다.
따라서 물러설 수 없이 싸우는 것이다.'
과연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 책에서 하나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격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그 머슴과 자신을 같은 사람으로 보았기에
변호에서 물러난다면 그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열변을 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담아두었던 생각 혹은 불만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의 알베르트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로테라는 아름다운 약혼자는 없지만,
기본 생각이나 자세가 비슷한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권총을 빌려 주실 수 없을까요?
부디 안녕히 계시기를....'
이라는 쪽지를 받았을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디에 쓰일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권총을 주어야 하는지,
거절을 해야 하는지,
권총에 공포탄을 넣어 줘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쩌면 저는 베르테르가 아닌 알베르트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기에
슬퍼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by | 2007/09/30 20:29 | in Book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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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님은 중학생일 때 읽으셨군요.ㄷㄷ
국어 숙제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니.. 무섭네요.
저도 비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미 비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 충격이 없었습니다.OTL...
물귀신 작전인가 ㅋㅋ
그렇습니다. 저만 당할 수 없습니다.^^
"괴테가 샤로테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베르테르를 통해서 구현하였는가"여서
베르테르에 의한 로테로부터 괴테가 본 사로테의 모습을 볼수있었기 때문에 다른건 안들어왔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아.. 그렇군요.
작품 해설에서 두 가지 사건을 모토로 하여 해당 소설을 적었다고 하던데,
그 첫 번째가 괴테 자신의 얘기였군요.
(사실 해당 문장에 주어가 없어서 모호했습니다.)
그 관점에서 소설을 읽는다면 흥미롭겠습니다.^^;;
하지만 전 방관자의 입장에서 읽은터라 재미가 없었습니다.OTL....ㅜㅜ
난 베토벤의 잘남을 질투하는 베르테르의 슬픔인줄 알았는데...;ㅁ;
정말 남들보다 더 노력했지만 언제나 베토벤에게 지고 마는 숙명의 베르테르...슬픔.
'카이스트' 드라마에 나왔는데;; 흠. 그 내용이 아니었군.
카이스트 드라마라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드라마인지라..;;;
베토벤을 질투하는 괴테의 얘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 쪽에 대해서 읽어봐야할 듯...
천재가 질투하는 천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