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2일
서울대 박물관에서 생긴 궁금증
10월 6일과 8일에 각각 서울대 박물관과 경희대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 곳에 가서 궁금했던 것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당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서울대 박물관입니다.
1. 전곡리 유적에 대한 설명 중 하나입니다.
이 유적이 모비우스(H.Movius)의 가설이
틀렸다는 예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가설이 무엇이었고,
왜 그것이 틀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먼저 모비우스의 가설을 검색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글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해당 가설에 대한 페이지는 없었습니다.
대신 백과사전을 비롯해 관련 글에서 나오는 설명을 적겠습니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의 석기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
세계 전기구석기문화가 유럽 ·아프리카의 아슐리안문화전통과
동아시아 지역의 찍개문화전통으로 나누어진다는
기존의 H.모비우스 학설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프랑스 생 타슐 유적에서 처음 발견돼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15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까지 사용됐던 구석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모비우스의 학설이라 하여
이런 아슐리안형 석기문화는
유럽과 아프리카에만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리고 모비우스라는 사람에 대해 검색해보았습니다.
그 곳을 살펴보니 Movius Line이라는 것을 제시했다는군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을 간단히 읽어보니
주먹도끼(Hand axe)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발견이 되고,
인도 북쪽을 경계로 발견이 되지 않으니
선을 하나 그어 두 부분으로 나누었군요.
또한, 아시아에서 주먹도끼가 발견이 되지 않는 이유로
원래 주먹도끼를 쓰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갔으나
도착한 곳에서 얻은 재료가 만들기에 마땅치 않아
만드는 법을 까먹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아니라면 제 영어 독해 능력에 문제가...;;;;)
하지만 저 유적에서 나온 주먹도끼가
해당 가설이 틀렸다는 반례가 되었네요.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중요한 유적임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중국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나라 유적도 추가하고 싶으나,
제가 영어와 역사가 딸려 설명을 못하겠습니다.OTL...
2. 전곡리 유적 설명에 어떻게 적혀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제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고졸한 형태의 석기가 늦은시기까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
아마도 설명문에
고졸한 형태의 석기가 늦은시기까지 만들어졌다라고
적혀있었던 듯싶습니다.
이에 대한 백과사전의 얘기는 이것인 듯싶습니다.
석기는 대부분 직접타격법 또는 모루떼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며,
기본형이 만들어진 뒤에 2차 가공을 시도한 것은 극히 적다.
2차 가공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가공에 그치고 있어서
동아시아의 전기구석기의 일반적 양상인 석기의 비정형성이 나타난다.
-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다면 이유에 대한 답이
동아시아 전기구석기의 일반적 양상이기 때문이다..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왜 2차 가공을 하지 않았는지...
2차 가공으로 나오는 석기가 뛰어나지만,
거기에 드는 비용과 노력이
1차 가공으로 나오는 석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높기에
실험적으로만 사용한 것일까요??
구석기인들에게 물어볼수도 없고 답답하네요.;;
3. 주월리, 가월리 유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서 발견된 것 중 하나가
2만 5천년 전 일본에서 날라온 화산재라고 합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발생하였습니다.
화산재인 것은 분석해서 알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일본에서 왔는지 백두산에서 왔는지 등은 어떻게 아는걸까?
만약 일본에서 왔다면 후지산인가?
먼저 해당 유적에 대한 백과사전 설명을 검색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화산재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대신 다른 곳에서 관련 글을 찾았습니다.
유적이 형성된 시기문제와 관련해
전곡리 및 주월리.가월리 유적의 퇴적층 상부에서
2만4천년 전 무렵 일본에서 날아온 화산재 자료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들 유적이 적어도 2만년 전 무렵까지
계속 형성되었음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유적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퇴적층의 토양학적 특성을 생각할 때,
8만년 전 무렵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엠파스 백과사전
하지만 여기서도 관련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보다 조금 자세한 정보가 담긴 자료를 찾았습니다.
해당 유적에 대한 설명은 아니지만,
시간대가 어림잡아 맞는 것으로 보아
그 화산재의 이름은 아이라-탄자와인 듯싶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자료를 발견하였고,
역시 시간대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AT(Aira-Tanzawa) 광역테프라'
해당 자료를 살펴보면 그 원리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각각의 테프라(tephra)들은 기원한 화산에 따라
독특한 물리적 화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퇴적물 내에 존재하는 테프라층을 이용하여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퇴적물의 층서를 대비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각 화산마다 특징들이 다르군요.
전 이 화산이나 저 화산이나 같은 마그마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가 문득 그 때 떠오른 궁금증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편서풍이 분다.
따라서 비구름도 대체로 서쪽에서 오는 것으로 배웠다.
또, 황사가 우리나라에 오는 이유도 편서풍으로 배웠다.
그럼 우리나라에 있는 화산재는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동쪽에 있는 일본의 화산재가 우리나라로 왔을까?
그럼 백두산이나 한라산, 울릉도에서 날라온 것도 있다는 뜻일까??'
이런 의문을 가졌지만,
일본에서 왔다고하니 화산재는 바람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분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문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층을 형성시켰기 때문에
테프라연구에는 이용하기 어렵다.
백두산과 울릉도는 광범위한 지역에 테프라를 공급했지만
편서풍의 영향에 의해 동쪽 방향으로 퍼졌기 때문에
동해의 해양퇴적물 내에서는 관찰되지만
남한의 육상퇴적층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육상 고토양에서 이용되는 광역테프라는
주로 일본에서 분출된 테프라들로 제한된다.
이해가 안되는군요.
백두산과 울릉도는 편서풍 때문에 발견되지 않으나
일본 것은 발견된다라....~_~;;
4. 흔암리 유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유적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쌀은 일본(오키나와)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탄화된 쌀이 유적에서 발견되고나서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쌀이 넘어갔다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먼저 백과사전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과 관련된 글입니다.
토기 안의 흙 속에서 탄화된 쌀(2알) · 겉보리(2알) ·
조(1알) · 수수(1알)가 발견되었는데,
쌀은 자포니카종(種) 중에서도
단립극소형(短粒極小形)임이 밝혀져 주목되었다.
이처럼 쌀 ·보리 등 여러 곡식을 재배하였음은
청동기시대 전기에 한강 유역에서 쌀이 재배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줄 뿐 아니라,
한국 벼의 전래 경로가 화난[華南]지방에서
기원한다는 종래 일부 학자의 견해를 입증하는 것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검색을 더 해보니
이 유적을 조사하신 분에 대한 글을 찾았습니다.
"고고학자로서 제 인생에서 거둔 가장 큰 보람은
경기도 여주 흔암리 유적을 발굴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기원전 4세기경 쌀의 흔적을 발견해 놓은 상태였는데,
우리나라는 김해패총에서 발견한 기원 후 1세기 쌀이 전부였어요.
당연히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쌀이 일본에서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였죠."
흔암리에서 쌀의 흔적을 찾아나선 임 교수는
미국에서 ‘워터 플로팅’(Water floating)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 와 적용했다.
물을 이용해 흙 속에 섞여 있는 곡물의 흔적을 찾아내는 당시 첨단기술.
결국 작업 5개월 만에 탄화된 좁쌀과 쌀알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샘플을 일본과 미국으로 보내 기원전 10세기 것으로 인증 받았다.
전 세계 고고학서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쌀이 전파된 것으로 새로 쓰이게 된 것이다.
임효재 한국선사고고학회장의 얘기입니다.
과연 그러한 이유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쌀이 넘어갔다는 설이 있었군요.
하지만 흔암리 유적에서 탄화미가 발견되어
그 설이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역시 과학이란 중요하군요.^^;;
5. 아차산성-아단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저 곳은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 개로왕이 처형당한 곳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역시 백과사전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바로 관련글을 보여주네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475년 백제의 개로왕(재위 455∼475)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한 3만여 명의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이 산성 밑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재위 559∼590)의 사위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竹嶺)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 초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 네이버 백과사전
해당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오는군요.
정말 그 곳은 언제나 전쟁터였군요.
혹시 지금도 그 때의 원혼(?)이 떠돌고 있나요??;;;
이것으로 서울대 박물관에서 가졌던 궁금증을 해결하였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으니 조금 답답하네요.^^;;
또, 서울대와 경희대 모두 이 글에 적고 싶었으나,
서울대만으로도 글의 양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경희대는 후에 따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참조
# by | 2007/10/12 19:02 | in Life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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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찾다보면 궁금증이 계속 생기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하나의 궁금증이 생기면 거기에 답을 얻기 위해 찾아내고,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길 것이고.....
하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져요.
화산재 얘기도 테프라연대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있는 것을 보고 그만두었어요.ㅜㅜ
저는 과학중에서 지구과학과 생물이 약하거든요.;;;
(다른 건 강하지도 않고 그럭저럭..^^)
구석기 시대 전기에는 주로 거친 재질(규암,응회암 등)로 만든 큰 석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점점 후기로 갈수록 석기가 작아지면서 슴베찌르개 같은 유물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세석기같은 석기가 나오지요!
아마 저 설명은 전곡리 유적에서 나오는 석기에 대한 설명이고, 전반적인 구석기 시대의 유물에 대한 설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아.. 그러니까 전곡리 유적에 한정된 얘기이군요.
그럼 왜 그 곳에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 곳에서는 거친 재질의 석기만이 구해졌기에 그런것인지.....
궁금증이 날로 늘어나네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